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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성읍민속마을: 바람과 자연을 품은 삶의 흔적

by 옆집멘토 2025. 4. 30.

제주성읍민속마을
제주성읍민속마을

 

 

제주 성읍민속마을의 역사적 배경과 형성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위치한 성읍민속마을은 조선시대 제주 동부지역의 행정·군사·정치적 중심지로 기능하였던 유서 깊은 마을입니다. 1410년, 조선 태종에 의해 설치된 정의현(旌義縣)의 중심지였으며, 약 500년 동안 제주 동부를 관할하는 행정기관이 이곳에 자리잡았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이 삼분 체제를 이루었는데, 성읍은 그 중 하나로 번성한 곳이었습니다. 현재 성읍민속마을은 1984년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15호’로 지정되었고, 체계적인 보존 관리 아래 조선 후기 제주 지역 민속 생활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특유의 거센 바람, 척박한 화산암 토양, 한정된 물 자원 등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제주인들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지혜를 발휘해왔습니다. 성읍민속마을은 이러한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생생한 흔적을 보여주는 대표적 공간입니다. 오늘날에도 약 100여 채의 초가집과 돌담, 고택, 전통 민가들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성읍 골목을 걷다 보면, 시간의 두께가 느껴지는 돌담길과 억새풀로 얹힌 지붕 사이로 햇살이 스며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여행객은 “이곳을 걷다 보면 조선시대 제주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고, 마치 오랜 조상의 숨결을 따라 걷는 느낌이 든다”고 감탄했습니다.

 

 

성읍민속마을의 독특한 건축 양식

바람과 화산을 이긴 집 성읍민속마을의 건축 양식은 제주 자연환경에 철저히 순응하며 발전해왔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잣담'이라 불리는 돌담입니다. 제주의 잣담은 화산암을 가공하지 않고 자연 상태 그대로 쌓아 올린 구조로, 강풍이 벽을 강타하는 대신 돌틈을 빠져나가면서 바람의 세기를 자연스럽게 분산시키는 효과를 냅니다. 이런 구조는 수백 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고, 자연을 이용해 자연을 이겨내는 제주인의 지혜를 상징합니다. 초가집 역시 제주만의 특별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삼목구조(三木構造)’로 불리는 이 방식은 굵은 중심 기둥과 양옆 기둥, 서까래로 이루어진 간결하면서도 튼튼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억새풀이나 띠풀을 촘촘히 얹어 만든 지붕은 두꺼워 강풍과 비를 막아주며, 경사를 크게 주어 빗물이 빠르게 흘러내리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문과 창문은 최소화하여 혹독한 바람과 기후를 최대한 차단하고, 여름에는 서늘함을 유지하는 효과를 얻었습니다. 특히 성읍민속마을에서는 ‘돗통시’라 불리는 독특한 공간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돼지우리와 화장실을 결합한 구조로, 가축 배설물을 비료로 재활용하는 생태적 시스템이었습니다. 현대 관점에서는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자원 순환을 고려한 지속 가능한 생활양식의 표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성읍민속마을의 건축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거센 자연을 품고 이겨내며 살아온 제주민들의 삶의 철학과 생존 전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주 성읍민속마을
제주성읍민속마을

 

 

제주 성읍민속마을의 생활상과 공동체 문화

성읍민속마을 주민들의 생활상은 제주도 특유의 자연환경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척박한 토질과 물 부족 문제로 인해 논농사 대신 보리, 조, 감자, 고구마 같은 밭작물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또한 가축 사육, 특히 돼지, 말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경제 활동이었습니다. 농사철에는 ‘수눌음’이라 불리는 협력 문화가 활성화되어, 이웃 간에 노동력을 교환하며 공동 작업을 수행하였습니다. ‘수눌음’은 단순한 도움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사회적 시스템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농사일은 물론, 집 짓기, 돌담 쌓기, 장례 준비까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함께 했습니다. 이처럼 성읍민속마을은 자연의 위협에 맞서는 동시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삶을 이어나간 공간이었습니다. 또한, 성읍민속마을 곳곳에는 제주 전통 신앙의 흔적도 깊게 배어 있습니다. 마을 어귀에는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당(堂)’이, 가정에는 조상을 모시는 ‘신당’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제주민들은 자연과 조상신을 신성시하며 매년 제례를 지내고, 자연재해를 막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성읍민속마을을 직접 방문하면, 겉으로는 소박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생명력을 품은 생활 양식과 정신 문화가 골목마다 숨 쉬고 있음을 생생하게 느끼실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단단한 그 숨결은 현대인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합니다.

 

 

현대적 보존과 성읍민속마을의 미래

오늘날 성읍민속마을은 ‘살아 있는 민속박물관’으로 불리며,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으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제주도와 마을 주민들은 초가 복원 사업과 전통 기술 전승에 매진하고 있으며,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전통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초가 이엉 잇기 체험, 제주 농경 문화 체험, 전통 민속놀이 체험 등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현대화와 관광객 증가로 인한 상업화 위험성, 초가 재료(억새, 띠풀) 확보의 어려움, 전통 기술자 부족 등의 과제도 함께 대두되고 있습니다. 특히 일부 상업 시설이 마을 주변에 무분별하게 확장되면서 고유 경관을 훼손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에 제주특별자치도는 2030년까지 성읍민속마을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원형 보존과 현대적 이용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초가 복원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건축 재료 농장을 운영하여 자원 확보에 힘쓰고 있으며, 마을 내 과도한 상업 행위를 제한하는 규정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성읍민속마을의 지속 가능성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미래 세대에게 살아 있는 전통문화를 전승하고, 제주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위대한 지혜를 세계에 알리는 데에 있습니다. 앞으로도 성읍민속마을이 제주문화의 상징으로 우뚝 서기를 기대해 봅니다.